Theory and Life: a pessimistic approa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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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실이 된 기획 공안사건과 자기존재 증명으로서의 진보

    2023.01.18 by 비관자

  • K-콘텐츠의 성공과 자본주의적 보편성

    2022.09.14 by 비관자

  • 21세기 논문 작성 방법: 표절이지만 표절이 아닌 논문(?!)

    2022.08.12 by 비관자

  • '급진적 청년 연구자'들의 쁘띠-부르주아적 지향

    2022.07.18 by 비관자

  • K-페미니즘의 인식론적 폭력

    2022.06.22 by 비관자

  • 청년 연구자들의 빛나는 언어 감각

    2022.05.04 by 비관자

  • 삶의 이유를 논증하는 것의 문제

    2022.05.03 by 비관자

  • 관계망에서의 이탈과 우울

    2022.05.03 by 비관자

현실이 된 기획 공안사건과 자기존재 증명으로서의 진보

2023년 1월 18일, 민주노총 곳곳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윤석열 정권이 자신의 위기를 기획된 공안사건으로 돌파하려 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임이 드러났다. 구체적인 정치적 맥락에는 국정원의 존재가치 문제가 얽혀 있는 듯하다. 그러나 내가 관심이 가는 것은, 한때 운동권의 '명망가'였던 '굥찍' 혹은 '2찍'들과, 우리의 진보적 연구자들의 태도가 어떠할지.. 2찍 명망가들은 NL탓을 할 가능성도 꽤나 있겠다. (그러는 지들도 NL이거나 NL이랑 친했으면서..) 진보적 청년 연구자들은 사상의 자유를 부르짓겠지, 자기들끼리 보는 SNS에서. 2찍 명망가들에게는 그들의 도덕적 타락에 대한 비난을 가득 담고, 그러나 우리의 청년 연구자들에게는 안타까움의 마음을 담으며.. 공통점: 그들의 '진보'는 자기 존재..

카테고리 없음 2023. 1. 18. 13:02

K-콘텐츠의 성공과 자본주의적 보편성

한국 문화의 역사에서 기념이 될 만한 일들이, 최근 몇 년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 팬덤 현상 및 아이돌 산업에 대한 별도의 분석이 필요할 BTS, 블랙핑크 등의 세계적 인기몰이와는 별개로, 서사가 중심이 되는 문화콘텐츠에 대해서는, 단순한 찬사나 거북한 '국뽕'을 넘어서 생각해야 할 문제들이 놓여있다. K-콘텐츠 자체의 가치 영화 과 드라마 이 거둔 성과는, 많은 언론이나 식자들이 이미 (과도할 정도로 쏟아내듯) 그 자체로 뛰어난 것임이 분명하다. 이 작품들은 (은 제대로 감상하지 않았으니 주로 에 한정된 것이지만,) 대중적인 문화상품이 가져야 할 덕목들을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충분한 정도로는 갖추고 있는 듯하다. 에서 나타나는 서사와 미장센, 그리고 쇼트들과 시퀀스들이 보여주고 있는 운동의 조화는, 영화..

아카데미의 늪 2022. 9. 14. 00:51

21세기 논문 작성 방법: 표절이지만 표절이 아닌 논문(?!)

논문이 표절이지만 표절이 아니라고 한다. "일부 타인의 연구내용 또는 저작물의 출처표시를 하지 않은 사례가 있으나" 표절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려, '박사학위논문'이. 아시다시피, 현 대통령 영부인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논문 이야기다. 이미 대통령 선거운동 시기부터 문제가 된 사안들에 대해, 김 여사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한 국민대는 '표절이지만 표절이 아님'(!!!) 판정을 내렸다. 이로써 박사학위논문의 21세기적 기준이 이제야 마련되었음을 확인하니, 여사와 국민대는 얼마나 큰 학술적 족적을 남기고 있는가! [굳이 판단하지 않고 학술지 발간 학회에 떠넘겼어도 되었을, 김여사의 학술지 논문에 대한 판단을 기꺼이 맡은 국민대는, 연구자들의 공동체로서 학회가 지녀온 과학혁명 이래로의 성격을 재규정 하였으니, 세..

아카데미의 늪 2022. 8. 12. 00:15

'급진적 청년 연구자'들의 쁘띠-부르주아적 지향

아카데미 일반이 쁘띠-부르주아적 경향을 띄는 것은 물론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스스로를 꽤나 급진적인 정치적 지향을 가진 것으로 생각하며, 실제로 그런 내용의 연구를 수행하는 우리 세대의 청년 연구자들이 쁘띠-부르주아적 지향을 무의식 중에 내보이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아카데미에서의 '급진적 연구'라는 것의 한계가 무엇이며, 그것이 무엇에 연원을 두고 있는가를 밝히는 데에 도움이 될 듯하다. 하층 프롤레타리아 출신 연구자가 느끼는 미묘한 이질감 최근 비관자에게 문득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은, 비관자가 주변의 다른 '급진적' 성향의 청년 연구자들에게 미묘한 이질감을 느낀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이제야 어리석게도--그 이질감이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단지 연구 분야가 다르기 때..

소파 위의 담론들 2022. 7. 18. 13:22

K-페미니즘의 인식론적 폭력

오랜만에 돌아와 이런 글을 쓰려니 마음이 가볍지는 않다. 아직까지 페미니즘은 더 성장해야 하고 그럴 수 있는 '진보적' 입장이다. 그렇기에 그 입장의 오류에 대해서 비판하는 것이, 자칫 보수주의로부터 페미니즘을 공격받게 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아직도 크다. 하지만 무언가 말을 해야 할 때이다. 아니, 그 '때'는 이미 한참 지났지만, 그러니 더 말해야겠다. 익명을 통해서라도. (익명을 취할 수밖에 없는 비겁함을 용서하시길...) '짤짤이' 혹은 '딸딸이' 민주당 최강욱 의원이 징계 당할 처지에 놓였다. 당내 온라인 회의에서 성희롱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은 최 의원이 "딸딸이"라는 말을 했다고 하고, 최 의원은 그게 아니라 "짤짤이"라는 말을 오해한 것이라 하는 듯하다. 사실, ..

신앙이 된 이론들 2022. 6. 22. 10:29

청년 연구자들의 빛나는 언어 감각

언어(言語): 생각, 느낌 따위를 나타내거나 전달하는 데에 쓰는 음성, 문자 따위의 수단. 또는 그 음성이나 문자 따위의 사회 관습적인 체계.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오늘날 인문학 분야의 '청년 연구자들'에게 두드러지는 학문적 능력--어쩌면 능력보다는 거의 기질적인 것에 가깝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은 언어에 대한 예민한 감각이다. 전공을 막론하고 그들은 어휘에 대한 놀라울 정도의 감각을 드러낸다. 그런데, 언어학이라는 경험과학적 성격이 강한 분야나, 어문학 전공에서 어학(특히 문법)에 천착하는 이들보다, 오히려 인접분야에서 분투하는 우리 '연구자'들의 감각이 더욱 두드러지니, 이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이 예민한 감각의 소유자들은, 무엇보다--거의 선험적이거나 초경험적인--감각을 통하..

소파 위의 담론들 2022. 5. 4. 18:48

삶의 이유를 논증하는 것의 문제

삶의 이유 논증(나의 정의): 죽음을 택하지 않고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타당한 이유를 찾기 위한 논증 초월적이지 않은 삶의 이유 논증은 불가능한 것 같다. 칸트적 초월을 인간 삶의 근원에 결합시키거나, 혹은 일상에서도 초월적이라 불리는 존재를 외삽함으로써만, 철학적 논증이 가능한 듯하기 때문에. 삶의 당위를 내적으로 정당화하는 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자연주의, 특히 자연과학적 인간학에 길을 열어주면 쉽게 논증(사실 논증도 필요 없을 것이지만)이 가능하지만, 사유의 영역을 선뜻 넘어서는 것이 그렇게 깔끔해 보이지는 않는다. 바스카가 했듯이 초월적 논증의 방향을 인식이 아니라 세계로 확장함으로써, 적절한 논증에 도달할 수 있을까. 결국 말년의 바스카카 그랬듯 신에게 도달하게 될까. 지금의 나..

카테고리 없음 2022. 5. 3. 22:38

관계망에서의 이탈과 우울

최근의 사태들은 나를 관계의 그물망에서 이탈시킨다. 거의 모든 나의 사태들이. 관계의 그물망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혈연관계를 제외한 사실상 모든 관계로부터의 이탈 혹은 소멸. '로빈슨 크루소'는 부르주아적인 고전 정치경제학에서뿐만 아니라 나의 정신에서도 부정적 표상이 된다. 로빈슨적 인간을--이제 곧 내가 그가 될 참이니 로빈슨이라고 불러도 되겠지--상정하고 그를 '사유'했던 철학들은 무책임하다. 관계의 그물망을 효용의 관계로 보는 건 공리주의의 한계이겠지만, 이 계산적 견해는 분명 옳은 지점을 내포하며 오늘날/나에게 그 타당성을 더해간다. 이때 효용은, 언젠가 이글턴이 (대략) 모든 문학작품은 모종의 효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고 했던 그 의미에서의 효용이다. 관계망 위의 타인에게 효용을 주지 ..

우울로서의 일상 2022. 5. 3.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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